당신들이 보여준 열정만 받겠습니다
구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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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7 08:32
2023년 9월의 항저우. 17년의 세월을 건너 다시 결승까지 힘차게 약진했다. 대진운이 따랐다지만,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 법이다. 내친김에 21년 만의 ‘금빛 트라이’까지 넘봤지만 아쉽게 홍콩의 벽을 넘지 못했다.
무기력한 패배가 아니었다. 모두가 뜻을 모은 일방적인 승부 예측을 보란 듯이 깨뜨렸다. 홍콩이 영국계 선수들을 대거 투입하며 예상된 피지컬 열세를 투지와 팀워크로 버텼다. 최종 결과는 7-14 패배지만, 사실상 1-2다. 트라이로 얻는 5점과 추가 컨버전 킥 2점을 더한 7점이 한 턴마다 왔다 갔다 한 셈이기 때문이다.
졌지만 ‘참’ 잘 싸웠다. 하지만 믹스트존을 지나는 선수들의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허망함에서 비롯된 눈물인지 혹은 땀인지 모를 것들로 얼굴이 범벅이 돼 있었다. 대표팀 ‘둘째 형’ 한건규(36)도 소감을 묻자 한동안 목이 메어 답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이내 “응원해 준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울먹였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선수단장이자 대한럭비협회 회장인 최윤 단장도 마찬가지였다. 경기를 마치고 취재진 앞에 선 그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했다.
문득 ‘대체 무엇이 죄송한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들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해서’라는 모두가 아는 이유겠지만, 이제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무엇보다 각자의 위치에서 발산한 열정이 고스란히 전달됐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지 않아도 된다.